나에게 온 행운, 마개이너 1년 후기
과연, 연차가 능력일까?
6년 차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연차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차보다는 당연히 일머리도 있고 업무 능력이 높겠지만, 과연 3년 차가 나보다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툴, 새로운 매체가 계속 생겨나고 사라지는 마케팅 업계에서 과거의 경험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연계열 전공으로 운 좋게 마케팅에 들어서게 된 나에게는 같은 업계 지인이 없었다. 유, 무료 세미나나 컨퍼런스도 가보고, 마케팅 강의도 들어보고, 멘토링 프로그램이나 각종 모임도 참여해 봤지만 열심히 산다는 자기합리화 밖에 되지 않았다. 분명 모든 회사에는 마케팅 담당자가 있을 텐데 다들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업계 모임을 기웃거리다가 오픈소스마케팅을 알게 되었다. 마케팅 스터디나 모임은 온라인으로 종종 모집하는데 미리 참가비를 받지 않는 것과 실제 만나서 닉네임을 오픈하지 않는 것이 다른 점이었고, 업계 질문과 응답 뿐 아니라 맛집부터 병원추천 심지어 연애이야기 까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방인데도 스팸광고 비율이 적고, 지금은 1500명에 가까워졌음에도 여전히 관리가 잘되고 있어 신기하다.
오픈소스마케팅 그리고 마개이너
특이함의 정점은 바로 오픈소스마케팅(일명:오소마) 운영자 버거돼지님이 진행하는 스터디 마개이너다. 마개이너는 마케터+개발자+디자이너의 합성어로 웹 지식을 바탕으로 디지털 마케팅의 전반을 모두 다룬다. 커리큘럼은 HTML, CSS, Javascript, 디지털 마케팅 순으로 이어지는데 월 2회씩 약 10개월 과정이고 전액 무료다. 스터디라면서 비용이 왜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강의 비용이 아니라 스터디가 이루어지는 공간 대관료도 전혀 부담하지 않는다. 솔직히 다른 영업요소가 있겠지 싶었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정말 운영자의 재능기부로만 이루어지고 있고, 기수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총 10기수가 모집되었다.
마개이너에 모집에 대한 내용은 운영자 블로그를 참고하세요.
2019년 8월, 마개이너 6기가 되었다. 브랜드마케팅 경력에 연차도 높고, 나이도 많았는데 합류하게 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마개이너의 본질은 스터디다. 그리고 스터디는 같이 공부하는 거다. 이 중심을 잡아주면서 함께 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영자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을 거라 짐작한다. 물론 중간중간 강의(스터디라고 하기엔…)도 있다. 서로 돌아가면서 발표를 하게 되는데 초안을 보고 방향성을 잡아주는 것도 모두 운영자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거의 매번 과제가 있는데 과제 제출을 제시간에 하지 않거나 지각을 하면 해당 기수의 스터디는 운영자의 재량으로 강제 종료될 수 있다. 지난 1년간 일요일 아침 10시에 공유오피스에 모이는데 지각하는 사람도, 과제나 준비를 안 하는 사람도 없었다. 여러 기수가 과제 미제출로 중간에 종료되었는데 6기는 이렇게 살아남아 후기를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와 상관없는 개발자의 일
마개이너 이 전의 나는 HTML, Javascript 등은 개발자들이 쓰는 어려운 언어라고 생각했고, 마케팅과의 관련성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브랜딩 업무는 정확한 수치는 측정하기 어려워 기준을 만들어서 업무를 한다. 그래서 마케팅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경쟁사 측 마케팅 얘기지만 내부에서는 하기 어려운 불법으로 트래픽을 유도하는 작업이나 가짜 댓글을 발견하게 되면 직무에 대한 애정과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마개이너 스터디를 참여한 지 두 달이 지나면서 지금까지 웹을 전혀 모르면서 컴퓨터로 일하는 시늉을 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마개이너에서 다루는 내용은 세상에 없는 개념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해진 규약과 룰, 가이드와 사용법을 정확하게 같이 공부한다.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발표를 하다보면 그 사이사이 본인의 경험과 직무가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서로간 직무 교류가 되는 부분도 좋았다. 또, 최근 이슈가 된 뒷광고로 대표되는 편법이 여전히 판치고 있는 와중에 바른 정도를 공부한다는 느낌이다. 세상에 없는 저세상 창의성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웹 세상을 좀 더 예쁘게 볼 수 있는 기본 지식을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웹은 오픈 소스도 많고, 대체 텍스트도 그렇고, 더 나은 사회,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를 정해둔 따뜻한 느낌이다.
내가 열심히 할수록 웹 세상이 조금 더 깔끔해지고, 성과도 개선되는 일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디지털 노마드 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생각하고 컴퓨터가 일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문제 해결 실마리를 못 찾아 고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 스터디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비슷한 마케팅 직무로 서로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총 8명의 스터디원. 제출하는 과제 퀄리티와 스터디 발표 자료 피드백을 보면서 정말 많은 자극을 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마지막 두 번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된 부분은 아쉬웠다. 또, 3년 차 이상부터는 일잘러와 연차는 큰 상관이 없다는 생각도 굳어졌다.
열심히 한 만큼 성장할 수 있겠다는 느낌
1년 전의 이맘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기에 마개이너 스터디를 만들고 기꺼이 재능기부를 해준 운영자에게 고맙다. 편법으로는 끼어들기 어려운 구글의 SEO가 매력적이었고, 의사결정에 데이터를 참고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디지털 마케팅 과정을 공부하면서 마케팅퍼널을 고려해 행동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벤트에 다양한 매개변수를 넣고, 이벤트 트리거를 이용해 이메일, 알림톡, 리타겟팅 광고까지 갓구글이 제공하는 툴을 연결해서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작은 HTML과 내 소유 블로그의 존재인데 마개이너니까 가능한 시나리오다. 운영자가 블로그 만들어서 공유하면 가장 편하고 쉬웠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윈도우나 맥북 버전, 사용자 환경에 따른 모든 오류를 수정해주면서 직접 설치하고 변경할 수 있도록 한 단계씩 진행한 부분이 마개이너를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게 한 게 아닐까. 직장생활로 퇴화한 공부 근육이 다시 생겨났고, 퇴사하고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확신을 만들어 준 것도 마개이너였다. 모든 기수가 모여있는 통합방도 있어서 더 다양한 정보가 오가고 공유되는 것도 무척 좋았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기존 브랜딩 업무와 함께 지난 1년간 맛보기로 배운 디지털 마케팅도 함께 진행할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고, 지금은 사이트 개설이 진행 중이다. 기존에 디지털 마케팅을 한 적이 없는 올드한 회사라 내가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기존 마케팅 업무는 그대로 진행해야 하는 만큼 조금 빡세지만 그만큼 설레기도 한다. 2021년이 기대된다, 고마운 마개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