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하야마 아마리 / 예담출판사
28살, 그때 그 시절의 나
어렸을 때부터 일기를 썼었다. 선생님이 검사하지 않는 시점부터 열심히 썼던 것 같고, 십 대 시절, 특히 시험 기간에는 일기 쓰는 게 어찌나 재밌던지. 대학교에 가서는 월기에 가까울 만큼 한 달에 몇 번 쓰진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까 그때 그 시절의 내가 보여서 재미있다. 더 열심히 썼으면 좋았을텐데. 물론 이불킥할 내용도 많지만. 첫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1년 동안 50권의 독서일기를 써보자는 목표를 세웠었다. 태그가 46이 끝인 걸 보니 달성은 못 한 것 같지만. 사실 일기는 아무말 대잔치해도 괜찮으니까 부담 없이 쓸 수 있는데, 독서일기는 책에 대한 감상도 필요하고, 내용을 몇 마디로 정리하면서 추가로 내 생각을 적으려고 하다 보니 어려웠다. 난 사실 언어능력이 좀 떨어진다. 이 책은 내 나이 29살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서점에서 만났다. 고등학교나 대학교나 주변에 나와 같은 마케팅 직군으로 일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도 많이 했고. 제목에 낚여서 읽게 된 것은 맞지만, 나는 아마리처럼 자신을 포기해 본 적이 없어서 아마리와 같은 독기를 품은 사람은 될 수는 없을 거라는 후기가 써있다. 그리고 아마리가 이해가 간다는 말도 함께. 1년 뒤면 죽을 거니까 무슨 일이든 미룰 수 없고, 무서워하지 않을 용기가 생겼을 거라는 거.
조용한 절망 속에 스물아홉은 온다
주인공인 아마리는 평범한 중고등학교를 보내고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원래 인생이 다 그렇지 하고 졸업 후 잘 다니던 금융권 기업을 그만두고 파견직을 택한 것도 도교대생이었던 남친이랑 결혼하면 금방 그만둘 거니까. 그랬던 아마리에게 남자친구가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리고 소설의 당연한 수순처럼 아버지가 쓰러지고, 파견직이 정규직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5년 그 이별을 기점으로 정체된 채로 29살을 맞이한다. 뚱뚱하고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아마리는 29번째 생일을 자축하며 준비한 딸기 케이크를 먹기 직전 바닥에 떨어뜨린다. 먼지가 잔뜩 묻은 딸기에 손을 뻗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마리는 29살의 눈물 젖은 딸기 케이크와 함께 그녀의 생애 마지막 결심을 한다. 그녀는 1년 뒤 죽기로 결심한다.
내가 본 아마리 이야기
밤에는 술집, 낮에는 파견회사, 주말에는 누드모델, 1년 동안 2천을 목표로 달렸다. 또, 혼자서 여행하기 위해서 영어, 그리고 마지막 승부를 위한 블랙잭을 틈틈이 계속 연습해야했다. 밤에도 출근하는 곳이 있기 때문에 절대 파견회사에서 연장근무를 할 수도 없어서 좀비의 모습으로 출근해 일만 빠르게 하고 퇴근하는 에피소드가 재밌었는데. 짧은 감상문이었지만 보다 보니 내 기억에는 선명한 건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게 1분 1초가 아깝게 살았고, 그렇게 모인 돈은 약간 부족한 1500만 원이었다. 그녀는 라스베이거스 여행경비 500을 제하고 모두 블랙잭에 도전한다. 베가스에 갈 때는 자기가 죽을 수 있는 약도 챙겨갔다. 마침 내가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서 더 선명하게 눈에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썬 베드에 누워있던 장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장면, 드레스업을 하고 카지노를 하기 위해 나가는 장면까지. 그렇게 그녀는 생의 마지막 게임을 시작하는데..
라스베가스에서 한판 승부
1년간 연습한 블랙잭의 기량을 4시간 동안 펼쳤고, 12시가 되어 마치 신데렐라처럼 숙소로 돌아간다. 돈을 잃었으면, 그대로 자살. 그리고 분명 질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했고, 그게 아마리가 계획한 마지막이었는데. 카지노에서 마무리를 하고 챙겨온 남은 돈을 세어보자, 원금에 딱 5달러가 더해졌다. 세어보고 또 세어보고. 그래서 그녀는 다시 살아보기로 한다. 이때의 그녀의 기분은 나로서는 너무 궁금하다. 남은 생을 추가로 사는 기분일까. 일본으로 돌아가서 파견직으로 있을 때는 재계약도 어려웠던 그녀였는데, 아마리를 글로벌 기업에서 채용을 한 것. 지금은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으며, 이 이야기는 자전적 소설이기에 익명으로 낸 책이라고 한다. 물론 저자의 이름인 아마리는 실제 이름이 아니라 필명이라고 한다.
그때의 나는 라스베가스에서 블랙잭을 배웠지
내 인생은 대체로 할 일이 주어지고 그 일을 해내면, 그 다음 할 일이 생기는 그런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오히려 동생이 한국의 입시경쟁이 싫다고 15살부터 졸라서 18살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미국 교환학생으로 갔으니 극적인 삶이 아니었을까. 내 생각에는 동생 성적이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서 굳이 다른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 가는 게 더 힘든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쨌든 나는 영어를 싫어해서 해외랑은 인연이 전혀 없을 것 같았는데, 동생 대학 졸업식을 핑계로 방문하게 되었다. 간 김에 몇 곳을 여행했고, 그 중 한 곳이 라스베가스 였다. 공항에도 중간중간 카지노 기계가 있어서 신기했다. 기계를 몇 번 해봤지만, 돈쓰기가 그렇게 쉬울 줄이야. 내 돈을 먹고 또 먹고… 토해내는게 없어서 아니 이걸 왜 하고 있어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 동생과 함께 환급율이 좋다는 블랙잭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블랙잭 이야기
딜러와 플레이어가 카드를 한장씩 받아 21에 가장 가까운 수를 가진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리고, 딜러혼자 편이고, 나머지 플레이어가 같은 편이다. 즉, 딜러만 이기면 된다는 소리. 색 구분이 없기 때문에 초심자도 쉽게 해볼 수 있고, 최소 배팅 금액이 5달러로 테이블에서 할 수 있는 다른 게임에 비해 부담도 적었다. 룰을 알려주는 곳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스마트폰으로 네이버에서 블랙잭 규칙을 검색해 숙지 한 후 당당히 테이블에 앉았다.
블랙잭 기본규칙
최소 금액인 5달러를 걸어 이기면 5달러를 추가로 받아 10달러가 되고, 지면 배팅한 금액인 5달러를 잃는다. (블랙잭이 되면 1.5배를 받는다.) 카드의 숫자 계산은 카드에 써있는 숫자 그대로 숫자를 더해서 21을 만들면 된다. K, Q, J는 10으로 계산하며, A는 1 혹은 11 중 유리한 쪽으로 계산할 수 있다. 딜러는 플레이어에게 카드 두 장을 기본적으로 지급하며, 카드 숫자를 합쳐 가능한 21에 가깝게 만들면 이긴다. 처음 받은 2장 합쳐 21이 나오는 경우 블랙잭이 되며, 21이 되지 않았을 경우 원한다면 얼마든지 카드를 계속 뽑을 수 있다. 하지만 카드 숫자의 합이 21을 초과하게 되는 순간 딜러의 결과에 관계없이 무조건 플레이어가 패배한다. 카드를 더 받고 싶겠다는 hit 신호는 바닥을 검지로 톡톡 두면 치면 되고,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는 손등을 수평으로 흔들면 된다.
초심자의 행운
모든 도박에는 초심자의 행운이 있다. 블랙잭 룰 중에 같은 숫자가 나오면 스플릿을 할 수 있다. 패를 두 개로 나누어 게임을 동시에 두 번 할 수 있는 건데, 또 똑같은 숫자가 나오면 추가로 또 스플릿을 할 수 있다. 그러면 한 번에 세 게임을 하는 건데, 내가 에이스 카드 세 개가 연속으로 나왔고, 그 다음 카드는 영문카드 두 장과 숫자 10이 나왔다. 즉, 트리플 블랙잭 !!! 하나 씩 나올때마다 우와, 우와, 우와아아 소리 질렀고, 그때 100달러 칩을 처음 만져봤다. 동생이 창피하다고 그래서 빠르게 정리하고 그 자리를 뜨는 바람에 초심자의 행운을 그대로 날리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